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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사순절을 지나며 관련된 책들을 읽고 묵상하고 있다. 첫번째의 책은 로완 윌리엄스의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이다. '내가 바로 그다'라고 말하시는 마가복음의 그리스도가 이 책이 말하려 하는 전체의 메시지를 끌고 가는 것 같다. 그 분은 성공과 힘과 영향력의 자리에서 '내가 바로 그다'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그 말씀. 누가복음의 환대, 요한복음의 진리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강렬하게, 혹은 어렵지만 심오하게 법정의 그리스도를 말한다.
물러남 정치도, 단체도, 교회도 물러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곳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게(빼지 못하고) 되었다 말한다. 스스로 서지 못하고 여전히 도와달라 말하는 이들의 절박함과 본인의 어떤 생각이 합쳐져 그럴 것이다. 그 생각이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또 타이밍의 문제일뿐 언젠가 우리 모두는 조용히 사라진다. 선과 악의 구별은 아니지만 분별과 어리석음의 잣대로 나의 인생, 관계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 나의 욕망, 왜곡된 의로움... 가만히 하나님앞에 서서 자신을 점검하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보인다.
산, 산, 산 교우의 직장 동료 여자분인데 백패킹을 좋아할 뿐더러 심지어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지고 올라가 사진을 찍어 매년 달력을 만든다. 매달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가보았던 곳에 대한 그리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이 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는 지인께서 대만의 산에 관한 책과 그 안에 뉴질랜드 5달러를 끼워 넣어 주셨다. 지폐속의 인물은 에드먼드 힐러리.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영국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뉴질랜드 사람이다. 대만은 두 번 가보았는데 세 번째 갈 기회가 있다면 산에 오를 수 있으려나? ^^ 늘 동경하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쿰부 히말라야를 읽으며 그 곳을 걷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아주 꼼꼼한 설명과 사진때문에 큰 그림과 소소한 필요를 이해하는데 아주 도움이 되는..
힘빼고 하는 설교 이 교회의 개척목사로 섬긴지 11년째이다. 여전히 설교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돌아보면 늘 설교때마다 힘이 들어갔다. 준비한 설교를 잘 전달하는 일도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전하려고 했던 것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때도 있었다. 10년이 지나 그저 편안히, 긴장하지 말고, 하지만 담담히 말하려는 바를 전하고자 조금(?) 마음 먹었을 뿐인데 한결 설교시간이 편해졌다. 내 설교의 변천사를 스스로 세심하게 관찰하려 한다. 어떻게 변해왔고, 또 어떻게 되어져 가는지 말이다. 이제 10년이면 사역을 마무리한다. 그 사역의 많은 부분이 설교이다. 그러니 설교를 빼놓고는 사역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되, 배움과 변화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배움은 여전하되, 변화는 더디다.
어쩌다 거룩하게 그녀의 문신만큼이나 분명하게 용서와 은혜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인정하기 싫은, 하지만 누구보다도 은혜가 필요한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 몇 장면에서 감동스러워 울컥했다.
환대와 그 밖의... 환대하지 않았는데 혹은 못했는데 과분한 환대를 받았고, 환대하였으나 홀대, 냉대로 되갚음을 받기도 하였다.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애써 마음을 추스려도 속좁은 인간인지라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두고두고 이런 자신에 관하여, 혹은 상대에 대하여, 인생과 만남들에 대하여 곱씹어 보며 더 좋은 사람되는 도구로 삼으리라.
마침 지난 8월 아내의 난소종양으로 시작된 치료일정이 어제로 마쳤다. 종양수술과 그 이후에 이어진 항암. 여섯번의 항암을 마치고 CT를 찍고 그 결과를 어제 들었다. 전이나 재발없이 이상무. 아내가 6차 항암을 마친 1월 중순은 우리가 미국에 온지 30년이 되는 때였다. 30년전, 20대의 우리는 미지의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였다. 이제 정확히 30년이 지나 50대 중반의 우리는 또다른 인생의 시기로 접어든다. 30년전 그때처럼 우리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르나 확실한 한 가지는 지금은 더욱더 주님을 신뢰하고 그 나라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열흘 남짓이면 아내가 돌아오고 곧 봄이다. 새 싹의 기운이 기다려진다.
노간주 나무 노간주 나무는 영어로 Juniper tree이다. 유타나 아리조나의 사막이나 그랜드캐년에 가면 고고히 절벽을 지키고 서있는 모습들을 자주 보았다. 저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궁금했다. 나무 중간의 뿌리가 바위를 뚫고 내려가 물을 찾아 끌어올린다고 한다. 잠언을 묵상하는데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2:21-22)라는 구절과 노간주 나무를 읽던 날이 겹치며 그 말씀안에 살아가는 믿음의 삶에 대하여 묵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