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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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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e-나귀 나귀는 엄마 말(horse)와 아빠 당나귀(donkey)의 교배종이다. 말에 비하여 힘이 좋고 위험스러운 환경에서도 겁먹거나 흥분하지 않아서 산과 계곡에서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나르는 일에 최적이라고 한다. 길이 좁아서 한 발자국만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그랜드캐년의 계곡을 오르내리는 길에 나같으면 그 나귀에게 몸을 맡기지 못할 것 같은데 이런 나귀의 습성과 훈련은 의외로 신뢰할만하다. 참고로 그랜드캐년의 나귀들은 내쉬빌의 나귀농장에서 40년넘게 공급하고 있다고 셔틀버스의 기사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같은 곳에서 헬리콥터를 한 시간 운행하는데 드는 비용이 2천불이란다. 그럼에도 헬리콥터가 갈 수 없거나 물건을 내리기에 적합하지 않기에 비용으로나 모든 면에서 ..
순례자 순례자는 속도 자체의 속도대로, 즉 시간이 흐르는 속도대로 시간 속을 통과한다….시간과 지형이 함께 꾸미는 음모를 순례자는 당해 낼 재간이 없다(길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19) 길위에서 배운 것중의 하나는 거리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보는 것보다 더 멀어보이고, 더 높아보이고, 더 힘들어 보이는 산들은 딱 그만큼의 시간을 더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 지형과 시간은 무릎꿇게 할 그 지점에 이르러서야 나를 놓아주고 비로소 쉼을 허락했다. (자세히 보면 점처럼 보이는 이들이 사람이다. 부은 발을 물에 담그고 여전히 익을 기색이 없는 버섯 리조토를 꾸역꾸역 먹으며 이것을 삼켜야만 저 고개를 넘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친구 신학교에서 처음 만났으니 벌써 27년되어가는 인연입니다. 이 친구는 저와 참 다릅니다. 그는 contemplative하고 저는informative합니다. 그는 이끌어가고 나는 연결해 주었습니다. 그는 꼼꼼하고 저는 대충입니다. 그래서 그와 얘기를 하다보면 나와는 참 다르다 하는 생각을 할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그렇지만 그래도 만나면 좋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이친구의 좋은 점을 닮아갑니다. 산에 가려고 생각하면 늘 1순위로 물어보는 친구입니다. 산에서도 저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 친구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음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가수 임재범의 노래의 한 대목입니다. 저는 산길을 배낭메고 걷지만 어떤 이들을 다른 방식을 취합니다. 사진속에 나오는 하얀 헬멧을 쓴 여자분은 3~4천불쯤 지불했을 것이고 일정은 4박 5일쯤될 겁니다. 쉴때면 카우보이 모자를 쓴 가이드가 밥해 주고 저녁때가 되면 텐트도 셋업해 줍니다. 본인은 그냥 좋은풍경이 보이는 곳에 의자펴고 앉아서 쉬면 됩니다. 그렇다고 대단히 호사스럽지는 않습니다. 말그대로 텐트안에서 자야하고 식사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화장실에 가려면 삽들고 숲속으로... "그 돈으로 굳이 왜 그 걸..." 하겠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꿈을 꾸거나 그 말도 안되는 꿈을 실천에 옮기기도 합니다.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산에 가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 있는데 힘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무거운 배낭도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고 앞으로 쭉쭉 나 아갑니다. 반대로 배낭의 무게에짖눌려 힘든 고갯길을 오르는 이가 있습니다. 저는 물론 후자입니다. 힘들어하는 이를 위하여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힘든 내가 정 도움이 필요할 때보이거나 들릴 수 있는 거리정도에 있는 것. 배낭을 잘 고쳐매도록 도와 주는 일, 혹 잊었을까봐'물 좀 마셔요. 간식 좀 드세요, 저기 참 아름답죠?' 하고 조금의 여유를 주는 일, 실없는 농담으로몇 초간이라도 웃음짓게 만들어서 힘듦을 잊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일 정도입니다. 또, 하루를 마치고 텐트를 칠 때 물을 대신 떠다준다던가, 텐트치는 일의 한쪽 귀퉁이를 잡아주는 일..하지만 ..
앞 사람의 먼지 산길을 걷다보면 앞 사람과 붙어가는 것이 곤욕일때가 있습니다. 바로 신발먼지때문입니다. 돌길에서는 괜찮은데 고운 흙으로 다져진 길은 먼지가 많이 납니다. 그럴때에는 20미터가량 뒤떨어져서 걷곤 합니다. 인생도, 사역도 그렇습니다. 가까운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지만 사람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먼지같은 것들이 생기면 굳이 가까이 하지말고 조금 거리를 두다보면 어느새 오해와 서운함, 조금 미운 감정도 사라집니다. 그럴때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함께 걸으면 됩니다.
골이 깊은 곳 매주가는 동네산에는 살짝 깊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흔히 골이라고도 하죠. 깊이는 다를 지언정 어느 산에나 골은 있습니다. 골이 깊은 곳은 서늘합니다. 찬바람이 불고 눈이나 얼음도 늦게 녹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골로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땀을 씻어 냅니다. 겨울을 앞두고 골을 걸으니 한기가 듭니다. 사람도 인생의 골, 감정의 골, 상실의 골이 깊으면 그 사람과의 만남에 한기만 남습니다. 옷깃을 여미게 되고 빨리 그 골을 나오고 싶습니다. 새삼스레 자연과 사람이 닮았음을 깨닫습니다.
생각은 평탄할 길을 걸을때 해야 한다 높은 산을 오를 때는 그냥 오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음악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높이 오르면서 동시에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평탄한 길을 걸으며 그간 분주하고 바빠서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지혜로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