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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야!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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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불편함 오늘 밤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특히 춥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캔버스는 썩고 쓸모가 없습니다. 고무 판초는 모두 잃어버렸고, 우리 각자에게는 블랭킷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을 피웁니다. 그러나 세차게 내리는 폭우는 불을 끄고, 우리는 밤새도록 바위에 앉아 추위에 떨며 , 낮에 힘쓰고 애쓴 수고보다 밤의 불편함에 더 기진맥진합니다.(It is especially cold in the rain tonight. The little canvas we have is rotten and useless ; the rubber ponchos have all been lost ; we have not a blanker apiece. So we build a fire ; but the rain, coming..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 나는 사소한 것들에 정확하기보다는 중요한 것에서 틀리기를 원한다(로사리아 버터필드) 성격과 기질상, 사소한 것에 정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일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래, 내가 그런 사람이야"라고 공감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생활의 정확함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고 헤아리는 일에도 정확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런 정확함과 신중함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함과 신중함만을 쫓고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고 그것을 가장 우선하는 가치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것(저는 그것이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습니다)을 보지 못하면 '나는 (사소한 이것/저것들에) 정확하고 신중해'라고 자기만족에 머무릅니다. 그러..
부모와 학부모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김상곤 교육감) 방문한(뜻하게, 뜻하지 않게) 손님들로 분주했습니다. 한 것은 별로 없지만(아내는 한 것이 많습니다) 누군가 집에서 묵는다는 것은 신경이 쓰이는 일입니다. 오신 분들이 동년배 분들이라 자연히 자녀들, 비슷한 세대의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제 나름의 결론은 사회가 청년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과 사회를 이렇게 만든 기성세대의 책임이요, 잘못입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시끄럽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고 ..
사랑과 버터 마시 피어시(미국 소설가)가 말했듯 삶과 사랑은 버터와 같아서, 둘 다 보존이 되질 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랩 걸) 어떤 일을 10년을 하면 적응이 되는 것이 세상사이겠지요? 그런데 목회는 10년을 해도 여전히 초보이고 어렵습니다. 저에게 목회는 삶이고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예수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처럼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동화’되신 예수님에게서 길과 해답을 찾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순간도 제게 맡겨진 일을 감당합니다. 장례식에 다녀온 슬픔속에서도 엄마는 아이들을 위하여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에서 늘 새로운 사랑을 ‘짓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기 바랍니다.
발길이 뜸한 길 발길이 뜸한 길은 가시와 엉겅퀴로 막힌다(아바의 자녀) 기도의 길, 말씀의 길, 사랑의 길, 섬김의 길, 화해의 길.. 아름답고 선한 길들인데, 그래서 ‘걸어야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걷지 못하고 있는 길들이 있지는 않은지요? 너무 오랜동안 걷지 않아서 아예 길이 있었음을 기억도 하지 못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랜동안 걷지 않아서 어색하지만 아름다운 길들의 공통점은 금방 나와 길이 하나가 되도록 우리를 맞아 준다는 것입니다.
예배와 영혼의 질서 예배는 질서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끈질기게 증언하는 것이다(유진 피터슨, 부활을 살라) 열역학 제 2법칙의 엔트로피의 증가에 대하여 교우로부터 명쾌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연은 무질서를 향하여 증가하지, 질서를 향하여 모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혼돈과 공허가 있을 따름입니다(창 1장) 그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지금도 세상은 자기 나름의 논리와 이성으로 꾸려지는 것같지만 그 곳에 하나님이 없으면 무질서가 지배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나 자신과 세상의 모습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의지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는 몸부림입니다. 거기에서만 질서와 평안,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불멸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우리에게 조언한다. ‘다시 실패하라. 그리고 실패가 더 낫다.’ 우리는 ‘다시 기도하자, 그리고 기도가 더 낫다’가 되도록 노력하자.. 어떤 기도든 간에 그것이 끝난 뒤 찾아오는 조용하고 깊은 호흡은 또 다른 형식의 아멘이다(가벼운 삶의 기쁨) 예전에는 정말로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던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한번의 패를 잘못 놓으면 온 인생을 망친다는 생각이 팽배해서 누구도 실패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다릅니다. 기도가 놀라운 것은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기도하기 전보다 기도한 후가 휠씬 낫다는 사실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면서 나를 도우시는 나의 친구되신 주님과 그분의 신실하신 사랑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렇게..
노동 성령께서 감동하는 노동이란 자동적으로 윤리적인 요소를 동반한다(벤 위더링턴 3세) 우리 모두 자기에게 맡겨진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옆을 볼 수 없도록 눈이 가려진채로 앞만 보고 걸어야하는 말처럼 일할 수도 있고, 주변을 돌아보며 노동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본다는 것은 마음을 쓴다는 것입니다. 윤리의 마지막은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노동에 사랑이 더해진다는 것은 주변을 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성실히 일하되 사랑이라는 조미료를 첨가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이 없다면 아무런 맛이 나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