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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semite on my mind

Yosemite(3월, 2008년)

이제는 많은 인원을 데리고 캠핑이나 하이킹을 한다는 것이 예전처럼 흥분되거나 기대되지 않고 걱정이 앞서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어쩔 수 없는 간사의 육체적 한계를 절감한다. 이번 봄방학의 요세미티 캠핑도 그렇게 원해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적인 쉼을 갖거나 아님 차라리 말씀과 기도 중심의 수련회가 편하겠다 싶었으나 요즘 챕터의 상황은 오히려 서로 알아감을 원하는 상태였다. 이런저런 분주한 일정들이 중간에 있었으나 감사하게도 이젠 형석이가 모든 준비를 맡아서 할만큼 든든해 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캠프장은 모닥불에서만 맡을 수 있는 매캐한 연기, 나무 냄새, 그리고 텐트안에 자리를 펴고 침낭안에 들어갔을 때만 맡을 수 있는 그 느낌들과 더불어 나를 반겨 주었다. 유치함의 은사(?)를 발휘하여 아이들과 뒹굴지만 동시에 순간순간 요세미티를 느끼고 즐기려고 애써 본다.


오가는 길의 학생들과의 대화는 또다른 사역의 필요를 불러온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매를 원투원 연결하는 일, 한 형제와의 개신교와 카톨릭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 몇몇 리더들의 실수를 지적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일, 원래의 목적대로 1,2학년들에게 관심을 쏟는 일....

3일째 오후의 2시간의 자유는 잠시이지만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틈이다. Ansel Adams Gallery에서 찬찬히 사진들을 구경하고 요세미티를 주로 찍는 Michael Frye라는 사진작가의 디지털 사진 하나를 구입하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예술이란, 들여다보는 자에게 그 자신의 모습 대신 영원히 갈 수 없는 세상을 잠깐 얼핏 비쳐 준다는 한 전설의 조그만 거울 같은 것이다. 그때 우리 영혼에는 열망이 싹트기 시작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어쩌면 자연이 그러리라 여겨 지는데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예술 사진은 최근에 나의 마음에 여유를 준다.

요세미티의 즐거움의 하나는 자연에서 말씀을 읽는 일이다. 출애굽기 말씀에 모세가 하나님과 깊이 대화함으로 얼굴에서 빛이 났다고 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가 내 가르침과 삶속에서 스며 났으면 좋겠다. 평생 그렇게 기억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텐트밖에서 아이들은 오늘 밤도 campfire를 하면 마쉬맬로를 구워 먹으며(이렇게 마쉬맬로를 많이 먹는 그룹은 처음이다!!! ^^) 이야기꽃을 피운다. 서로 많이 친해진 것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시간들이다. 다시 침낭속으로 들어가며 마지막 밤을 맞이한다.

오늘 밤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가만히 누워 헤드램프의 하얀 불빛에 의지하여 켄 가이어의 "영혼의 창"을 읽다. 이야기의 창이다. 성경 못지 않게 이야기가(사실 성경도 이야기이지만...) 보고 느끼는 방식의 변화,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변화를 불러오는 힘이 있다고 한다. 아주 많이 공감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중의 하나인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의 대사를 통해서 이야기의 진가가 발휘된다. 저자인 노만 맥클린이 자신의 동생의 죽음을 아버지에게 알리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정말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나에게 다 말했니?" 아버지가 물으셨다.

"다 말했어요."

"별로 할 얘기가 많지 않지, 그렇지?"

"네."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어요."

"나도 그것을 알고 그렇게 설교해 왔단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켄 가이어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할 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사랑하는 것이었다. 완전히 계속 사랑하는 것이었다.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그 말을 듣기를 원하셨다고 생각한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가 아니라 한 이야기를 통해 들려 온 말. 속살을 내보이며, 최소한 내 경우, 영혼의 창이 된 이야기', (p. 109-110)

왠지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눈물이 나 더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조용히 내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2008년 봄의 요세미티는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