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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 교회 이야기

목회자 이중직에 관한 단상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고 지역교회를 섬기는 대신 캠퍼스 사역을 선택했다(이미 섬기고 있던 캠퍼스 사역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포기한 것들이 있었다. 풀타임사역이라야 가능하던 영주권도, 건강보험도(그때부터 40대 중반에 교회개척을 할때까지 건강보험이 없었다. 그 사이에 크게 아프지 않은 것이 은혜였다), 그리고 좀더 재정적으로 안정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신대원을 다니던 막바지에 닥친 IMF로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야간 주유소 알바도 해보고, 지금은 일본에서 미군 군목으로 있는 친구 목사를 쫓아 페인트칠도 해보고(이거 진짜 힘들다), 여름에는 흑인지역에서 교복파는 일도 열심히 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는 일하는 교우들의 심정을 이해해 보겠다고 막 시작된 음식 딜리버리(postmates)를 며칠 해 보았는데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 여기고 캠퍼스 사역으로 열심히 달렸지만 그 때 진 빚이 오래오래 남아 아내와 나를 아주 힘들게 하였다(지금은 다 갚았지만..)
우리가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때 여러 사람이 도와 주었지만 당시에 본인도 넉넉치 않은 형편에 후배 간사를 돕는다고 선배 간사가 내민 400불짜리 체크를 받을때의 감동이 아직도 기억된다.
어느 분의 목회자의 이중직에 관한 이야기로 시끄럽다. 나는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밀히 모른다(우리는 지지하건, 반대하건 아주 가까운 이를 제외하고는 사실 사람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지 않은가) 다만 나도 50대 중반이 되어보니 너무 어른 노릇하려고 말을 많이 하는 이, 무언가 확실한 대답을 주려고 하는 이, 너무 확신에 찬 이를 대할 때는 살며시 마음의 커튼을 치곤 한다.
겸손과 긍휼한 마음으로, 격려와 더불어 밥사고 커피값내고 더 여력이 된다면 10만원/100불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교회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양쪽 모두를 놓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몸이 너무 힘들어 부족한 말씀준비, 기도와 심방이 충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목회자들의 형편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 했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소위 '어른 노릇'하려는 사람들의 말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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