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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저만치 혼자서

by yosehiker 2023. 8. 5.
김훈선생의 신작 소설집이다. 7개의 단편을 묶어서 나온 것인데 김훈선생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은 너무 개별적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혹은 한 다리쯤 건너면 들을법한 일상의 이야기들인데 그 이야기들은 살아간다는 것의 현실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처절하고 엄숙해서 읽는 이를 숙연케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나 마지막 이야기인 '저만치 혼자서'에서 늙은 몸으로 자신의 속옷을 빨래하는 수녀님의 모습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이런 글을 써준 김훈선생을 존경한다.
"검은 핏줄이 피로해 보였다. 그가 대패로 밀어낸 나뭇결들의 질감이 그 근육 속에 기억되어 있을 것이었다." - 손, 54
"졸들이 한 칸씩 달려들 때, 오개남은 얼어붙은 비탈길에서 가속도를 받아서 내달리던 쓰레기 수레를 생각했다... 졸들이 달려들 때, 오개남은 손수레 손잡이를 치켜올려 꽁무니로 땅바닥을 긁던 마찰의 질감을 생각했고 무게와 가속도를 이기 못하고 주저앉던 다리의 무력감을 생각했다." - 저녁 내기 장기, 103-04
"시야가 넓어서 추위는 끝이 없었다. 초소에서 적은 추위와 시간이었다. 추위는 가늠쇠 구멍에 잡히지 않았고 시간은 조준되지 않았다." - 48GOP, 190
"몸이 살아서 병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병이라기보다는 시간이었다." - 저만치 혼자서,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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