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신경림 시인의 [파장]의 한 대목이다. 자주 설교에 인용하며 우리의 존재가, 공동체가 질그릇같지만 그 안에 보배를 가졌음을 말하곤 했다.
신경림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읽는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시인의 시들을 몇 개 읽는다. 아무쪼록 시인이 쓰신 시처럼 이제 평안하시길.
[집으로 가는 길]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석양 비낀 산길을
땅거미 속에 긴 그림자를 묻으면서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콧노래 부르는 것도 좋을 게다
지나고 보면 한결같이 빛 바랜 수채화 같은 것
거리를 메우고 도시에 넘치던 함성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굳게 잡았던 손들도
모두가 살갗에 묻은 가벼운 티끌 같은 것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도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그것들 모두 땅거미 속에 묻으면서
내가 스쳐온 모든 것들을 묻으면서
마침내 나 스스로 그 속에 묻히면서
집으로 가는 석양 비낀 산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