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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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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가 되는 사람 산을 오르다보면 이 트레일이 저 오른쪽의 산봉우리를 치고 올라갈지, 아님 왼쪽의 능선을 따라 스위치 백으로 올라갈지 분간이 되지 않을때가 있다. 그럴때는 어쩔 수없이 앞서간 사람의 흔적을 쫓게 마련이다.‘아, 저렇게 올라가고 있구나’를 바라보면 동시에 나의 위치를 확인한다. 먼저 가는 이를 쳐다보며 ‘언제 저기까지 가지?’라는 생각을 떨칠수는 없지만 그러다 보면 지금 나의 처지(?)가 애처롭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보다는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나도 한 발자국씩 가다보면 저기까지 도달하겠구나’로 생각을 바꾸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가 생긴다. 산을 오르며 품어야 하는 생각중의 하나는(그것은 어떤 형태의 걷기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걸어야 할 절대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 절대거리를 주파하는 속도..
산행과 음식 2 6명의 4박 5일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각자의 간식(에너지 바, 사탕…)은 알아서 준비하라고 했지만 그외의 음식준비가 만만치 않다. 아침은 오트밀과 건포도, 그라놀라, 커피, 그리고 한끼 정도는 한국에서 공수한 미역국밥.점심과 저녁은 신라면, 미역국밥과 같은 브랜드에서 만든 상하이 짬뽕밥, 밥풀떼기 즉석밥과 스팸(이게 낱봉지에 하나씩 담겨 파는게 있다. 평소에 먹지 않는 스팸을 산속에서 먹으면 기가 막힌 맛이다 ^^), 그리고 튜브형 볶음 고추장, 잠발라야, 스파게티, 타이 카레, 버섯 리조토… 등으로 준비하였다. 타이카레와 버섯 리조토는 최근에 미국에서 출시된 방부제가 덜 들고 맛은 아주 훌륭한 제품이 출시되어 선풍적인(?, 그래봐야 동호인층이 얼마 되지 않는 하이커들 사이에서..
간단히 언급하기는 했지만 첫날부터 정수기의 손잡이가 부러지는 바람에 하이킹 내내 고생을 했다. 손잡이가 부러진 지점은 Reds meadow에서 약 3.5마일 떨어진 곳이라 토니 목사는 다시 가서 여분의 정수기를 가져오겠다고 했으나 여러 일정상 차질이 생길 것 같아 조심히 사용해 보자고 만류하였다. 좀 불편하기는 했으나 큰 어려움없이 물을 정수할 수 있었다. 물과 관련해서 가장 어려웠던 기억은 아무래도 첫날 밤이었다. 모두들 거의 물이 떨어졌는데 피곤에 지쳐 캠프를 친 곳은 지도상으로도 그렇고, 주변을 둘러봐도 물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정말로 아껴서 저녁해 먹고 마시고 나니 다음 날 첫번째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물.” 가장 가까운 creek을 찾아 정수하니 살 것 같다. 오가는 JMTer들이나 PCT..
산에서 만난 꽃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시가 있다. 오르막 길을 오를때는 꽃이고 경치고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을만큼 힘들때가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리막길에서도 꽃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른 것 없다. 그저 내려오는 것도 오르막길 못지 않게 힘들거나 혹은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목적의식때문이다. 도나휴 패스를 내려오며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했다(내리막길도 힘들고 그래서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마음). 그러다 보니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유있는 스케줄이었는데도 거의 다 내려와서야 ‘내가 뭐하고 있는건가”싶어 눈을 들어 초원을 바라보았다.성자(saints)들은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회개하는 사람일 뿐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저 주..
산행과 음식 산행이 덥고 지치기 시작하면 늘 나누는 대화는 원초적인 음식 이야기이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냉면이다. 사실 냉면으로는 부족하고 고기와 냉면을 먹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산중에서 그게 가당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끼니때마다 드론이 날라와서 냉면도 주고 짜장면도 주면 정말 쉽게 JMT를 마칠 수 있겠다는 허황된 꿈도 꾼다.배고프고 힘들면 본능적으로 음식이 생각나듯이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증인들 넷째날은 도나휴 패스를 넘는 날이었다. 이번 백 패킹의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고 그날 걸어야 하는 코스가 길기도 해서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패스아래까지는 완만한 경사이기는 했지만 절대 거리는 줄일 수가 없어 일행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숨이 무척이나 차 올랐다.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데 이미 패스 정상에 도착한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뭐 내가 죽을 정도는 아니인지라 아무도 내려와서 도움을 주려는 이는 없었고 나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올라가려는 길이 눈에 덮혀 있으니 ‘이리로 올라오라’고 길을 안내해 주고 손짓해 주는 정도였다. 오르다 말고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어휴, 얄미워라. ㅋㅋ 다섯 모두 나에게는 증인들이..
배낭의 허리 나의 백 패킹 배낭은 그레고리 제품이다. 오스프리와 더불어 배낭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제품인 deuter가 그 뒤를 바짝 쫓는다고 해야 할까? 그레고리와 오스프리는 각각 사용하고 있는데 두 배낭회사 모두다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공히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허리 부분의 안정감과 무게의 분산기능이다. 뭐 다들 아는 거지만 배낭은 자기 몸통 길이를 먼저 재고 거기에 맞는 싸이즈를 골라야 하며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허리 벨트를 먼저 엉덩이뼈위로 올린 후에 어깨 끈을 조절해야 한다. 이번 백패킹은 지금까지 내가 짊어졌던 배낭가운데 가장 무거웠는데 첫날은 그 배낭의 무게가 너무 힘들었고 날이 갈수록 나아지기는 했지만 매일 오후가 되면 배낭의 무게가 나를 땅으로 ..
이상한 조합 이번 존 뮤어 트레일 하이킹은 참 이상한(?) 조합이었다. 나와 연결되었다는 걸 제외하고는 모두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멀리 콜로라도에서 김도현 교수님 부부가 오셨고 함께 나와 교회를 섬기는 지준/혜윤 부부가 조인했다(참고로 혜윤 자매는 김교수님 부부의 딸과 비슷한 나이이다.) 엘에이에서 토니 목사가 어려운 시간을 내 주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산행을, 그것도 백 패킹을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여행도 관계가 상하기 쉬운데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들면 금방 서운할 일이 생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4박 5일의 여정이 참 좋았다.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을 다른 이가 가지고 있었고 그 장점들을 남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고 돕는 최고의 팀이었다. 내가 계획했다고 하지만 정말로 나는 숟가락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