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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어릴때 두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두부뿐 아니라 묵도 싫어했다. 아마도 그 물컹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두부와 묵이 좋다. 어느틈에 이것들이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것들이 식탁에 오르면 손이 간다. 좋아하지 않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 그러니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너무 가까이하려 애쓰려 하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가까이하려 하면 나도 모르게 정신깊이에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강하게 자리잡기 때문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옳고 선하고 모두가 칭찬하지만 여전히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지나고 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두부처럼) 발견하게 될 날이 오려니 지금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
마무리와 시작 지난 가을이후로 계속되었던 교회 비저닝과 그 팔로우업들이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교우들이 솔선수범하여 모임을 주도하고 세심하게 이끌어 나갔다. 여러차례의 리더쉽 모임, 전체교우들과 함께하는 타운홀 미팅이후에 교회는 다양한 사역팀을 시작하고 교우들이 자원하였다. 오늘 한 교우가 '제가 다음 달부터는 해 보려구요'하는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예배후에 일단의 교우들은 예배팀으로, 날이 좋아 한 무리는 친교로, 또 어떤 가족들은 샌프란시스코로,.... 나는 '수건과 대야'라고 하는 운영위원회 모임에 참석했다. 그간의 일들에 대하여 감사하고 또 4월 중순이후로는 새로운 주중의 성경공부들을 시작해 보려 한다. 워낙 신실하고 실력있는 교우들이 많고 그들이 하는 성경공부며, 책 모임등을 지지해 ..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사순절을 지나며 관련된 책들을 읽고 묵상하고 있다. 첫번째의 책은 로완 윌리엄스의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이다. '내가 바로 그다'라고 말하시는 마가복음의 그리스도가 이 책이 말하려 하는 전체의 메시지를 끌고 가는 것 같다. 그 분은 성공과 힘과 영향력의 자리에서 '내가 바로 그다'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그 말씀. 누가복음의 환대, 요한복음의 진리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강렬하게, 혹은 어렵지만 심오하게 법정의 그리스도를 말한다.
물러남 정치도, 단체도, 교회도 물러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곳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게(빼지 못하고) 되었다 말한다. 스스로 서지 못하고 여전히 도와달라 말하는 이들의 절박함과 본인의 어떤 생각이 합쳐져 그럴 것이다. 그 생각이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또 타이밍의 문제일뿐 언젠가 우리 모두는 조용히 사라진다. 선과 악의 구별은 아니지만 분별과 어리석음의 잣대로 나의 인생, 관계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 나의 욕망, 왜곡된 의로움... 가만히 하나님앞에 서서 자신을 점검하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보인다.
산, 산, 산 교우의 직장 동료 여자분인데 백패킹을 좋아할 뿐더러 심지어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지고 올라가 사진을 찍어 매년 달력을 만든다. 매달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가보았던 곳에 대한 그리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이 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는 지인께서 대만의 산에 관한 책과 그 안에 뉴질랜드 5달러를 끼워 넣어 주셨다. 지폐속의 인물은 에드먼드 힐러리.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영국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뉴질랜드 사람이다. 대만은 두 번 가보았는데 세 번째 갈 기회가 있다면 산에 오를 수 있으려나? ^^ 늘 동경하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쿰부 히말라야를 읽으며 그 곳을 걷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아주 꼼꼼한 설명과 사진때문에 큰 그림과 소소한 필요를 이해하는데 아주 도움이 되는..
힘빼고 하는 설교 이 교회의 개척목사로 섬긴지 11년째이다. 여전히 설교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돌아보면 늘 설교때마다 힘이 들어갔다. 준비한 설교를 잘 전달하는 일도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전하려고 했던 것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때도 있었다. 10년이 지나 그저 편안히, 긴장하지 말고, 하지만 담담히 말하려는 바를 전하고자 조금(?) 마음 먹었을 뿐인데 한결 설교시간이 편해졌다. 내 설교의 변천사를 스스로 세심하게 관찰하려 한다. 어떻게 변해왔고, 또 어떻게 되어져 가는지 말이다. 이제 10년이면 사역을 마무리한다. 그 사역의 많은 부분이 설교이다. 그러니 설교를 빼놓고는 사역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되, 배움과 변화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배움은 여전하되, 변화는 더디다.
어쩌다 거룩하게 그녀의 문신만큼이나 분명하게 용서와 은혜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인정하기 싫은, 하지만 누구보다도 은혜가 필요한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 몇 장면에서 감동스러워 울컥했다.
환대와 그 밖의... 환대하지 않았는데 혹은 못했는데 과분한 환대를 받았고, 환대하였으나 홀대, 냉대로 되갚음을 받기도 하였다.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애써 마음을 추스려도 속좁은 인간인지라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두고두고 이런 자신에 관하여, 혹은 상대에 대하여, 인생과 만남들에 대하여 곱씹어 보며 더 좋은 사람되는 도구로 삼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