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MT(존 뮤어 트레일)

실패한 휫트니와 발도 못붙힌 JMT(8월, 2011년)

7월말에 엘에이에서 참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비에프 학사의 결혼주례를 하게 되었다. 그에 맞추어 휴가, 아니 정확하게는 산행계획을 세웠다.미리JMT(John Muir Trail)의 2박 3일 구간 permit을 받아놓고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나름 세심하게 세운 여행계획이 이번 휴가를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게끔 한 원인제공자가 되고 말았다.

원래는 엘에이에서 직접 요세미티로 가려했으나 동부에서 오는 형제들의 비싼 비행기값으로 인해 라스베가스로 오게 되었고 Death valley national park을 지나야 하는 위험(?)을 혼자 감수하게끔 할 수가 없어 결국 나 역시 라스베가스로 가게 되었다.


늦은 오후에 라스베가스를 떠나 어두워질 무렵 도착한 데스밸리는 예년의 8월의 날씨와는 다르게 무시무시한 벼락과 천둥을 쏟아붓고 있었다. 정말이지 앞뒤로 차가 한대도 없는 깜깜한 길에서 운전대를 붙잡고 나아가기가 너무 무서워 주변의 모텔 처마 밑에서 벼락이 비껴가기를 기다렸다.

그러고 들어간 데스밸리는 밤 12시에도 화씨 100도가 넘는 더위였다. 텐트를 치니 올라오는 지열때문에 속옷만 입고자도 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그렇게 자는둥 마는둥 하며 새벽을 맞이하고 분명히 찬물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뜨거운 물로 세수를 하고 잠시 자브라스키 포인트를 보고 데스밸리를 빠져 나왔다.

다행히도 overnight을 신청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1박 2일 산행 허가증을 얻게 되었고 곧바로 짐을 정리해서 80000피트(2400미터) 지점에 위치한 Whitney Portal trail로 향했다. 여기까지는 차로 갈수 있고 여기서 부터 14495 feet의 북미의 최고봉, Whitney 정상까지는 왕복 22 마일, elevation gain 6500피트를 걸어야 한다. 산행중에 두 곳의 캠프가 있는데 약 첫번째가 약 10400피트(3000미터가 조금 넘는 지점)에 위치한 out post camp이고 두번째가 12000피트(3600미터)에 위치한 Trail camp이다.

대개는 여기서 하루, 또다시 트레일 캠프에서 하루를 자며 고소에 적응하는데 우리는 1박 2일뿐이 없어서 첫날에 12000피트의 트레일 캠프까지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점심무렵에 시작한 하이킹은 저녁 7시가 넘도록 끝날줄을 몰랐고 아침 먹은 후에 각종 견과류와 과일 말린 것을 섞은 트레일 믹스를 먹으며 올라가던 우리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결국 11500피트를 올라가던 중, 이미 해는 저물고 몸은 완전히 지친 나부터 탈진하기 시작했고 겨우 텐트를 치고(저녁 8시에 이미 화씨로 30도 가량, 섭씨 영도 이하의 겨울 날씨였다. 옷을 갈아 입던 찬수 형제가 저체온증이 순간 올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다) 쓰러지듯이 잠에 빠져 들었다. 끙끙거리며 잠을 자다 깨어보니 새벽 2시. 그때부터 새벽 4시까지 추위에 깨고 자기를 반복했다. 트레일 옆에다가 쳐놓은 텐트라 새벽 4시 정상을 도전하던 사람들의 헤드램프가 우리를 비추었다. 뜻하지 않은 곳에 있는 텐트에 그들도 놀란 모양이다.

그 불빛에 잠이 깨어 밖을 나와보니 새벽별이 장관이다.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다 드디어 6시가 되었다. 옆 텐트의 인표, 찬수 형제, 두 사람이 지나가던 사람에게 성냥을 빌린다. 원래는 이번 산행을 위하여 찬수 형제가 Jet Boil이라고 하는 성능좋고 스스로 점화가 되는 장비를 구입했는데 평지에서는 잘 되던 점화가 그 전날 아무리 노력해도 불이 붙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지대가 높은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비상용으로라도 라이터나 성냥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걸로 겨우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라자냐를 끓였으나 정말 맛이 없었다. 반컵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커피와 찰떡 쿠키 하나로 속을 때웠다.


정상 공격은 무리라 여기고 철수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려오는 길은 편하다. Outpost camp에서 짐을 풀고 정확하게 24시간만에 밥을 하기 시작했다. 슬리핑 패드를 깔고 좀 자는 사이에 두 사람이 밥을 했는데 정말이지 내 일생에 그렇게 지은 밥은 처음 보았다.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정체불명의 쌀죽/밥이었지만 가져간 참치 김치 덥밥 소스를 부으니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곡기가 들어가니 힘이 좀 나서 내려오는 길에는 사진도 찍으며 하산을 마무리하니 오후 2시 가량.


거기서 이번 산행의 종착역인 맘모스 지역으로 이동, 마지막 날 셔틀버스 이동지점을 확인하고 우여곡절끝에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요세미티로 들어가니 230여개가 넘는 싸이트 가운데 50%를 first-come, first-serve로 캠퍼들을 받는 캠프장에 자리가 하나도 없다. 다행히 우리는 JMT 하이커라고 하니 Backpacker camp에 묵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부터 아킬레스 인대가 늘어나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데스밸리와 휫트니의 기온차와 그간 무리한 스케줄들이 겹친데다가 제대로 못먹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은 것이 무리가 된 모양이다. 하루종일 캠프장을 지키며 높은 지대(3000미터)에서의 밥하기는 어떤 요령이 필요한가 점심과 저녁에 걸쳐 시도해 보았다. 아웃포스트 캠프에서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밥이 탄생! ㅎㅎ 3분짜장소스로 해결하고 있으려니 낚시를 나갔던 인표, 찬수 형제가 자연산 송어 5마리를 잡아 돌아왔다. 이걸 구워먹으며 송어 신라면을 끓여 먹으면 맛있겠다고 하던 참에 마지막 일행, 은규 형제가 합류했다.


다시 왕복 2시간에 걸쳐 차를 가져다 놓고 요세미티로 돌아오니 늦은 밤. 내일은 발이 나아지기를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다. 그 다음날이 되어도 발은 나아지지 않고 결국에는 세 사람만을 JMT로 보내고 나는 이틀후에 맘모스에서 만나기로 하다. 가게에서 커피를 사느라 10여분을 소요한 후 주머니를 뒤지니 렌트한 차의 키가 없다. 아뿔싸, 트렁크에서 뭘 꺼낸다고 하던 찬수 형제가 깜박잊고 키를 가져가 버린 후.. 그 후 약 30분은 악몽의 시간......

아픈 발을 부여잡고 찬수 형제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가기를 거듭하다 보니 겨우 그들을 따라 잡았다. 웃을 수도, 울수도 없는 상황. 겨우 돌아와 나 혼자 텐트를 치고 하이씨에라를 즐기려던 계획은 흥미를 잃고 미리 맘모스로 가 있자고 그리로 향하지만 주말이라 싼 호텔들도 이미 2배이상 가격이 올랐다. 머리를 굴리다 보니 거기서 약 2시간 반 가량 남쪽으로 운전해서 가면 우리가 휫트니에서 내려와 샤워(5불)를 했던 호스텔이 있던 것이 생각났다. 하룻밤에 22불. 그러나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방을 써야 하는 곳. 그건 괜찮았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JMT 혹은 휫트니 등정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이다. 몰골은 남루하나 모두들 마음은 즐거운 사람들. 나는 반대.. ㅠㅠ


바로 위의 아가씨는 독일 아가씨인데 식당에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JMT를 위해서 독일에서 와서 20일만에 전 코스를 마치고 행복한 표정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고 있었다. 무척이나 그녀가 부러웠다. ^^ 그렇게 우울한 이틀이 지나고 발도 겨우 나아 맘모스에서 다시 일행들을 만나 늦은 저녁을 먹고 은규, 인표 형제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고 찬수 형제와 나는 하루를 더 머물고 사막을 거쳐 라스베가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다. 짧은 lay-over 시간에 함께 순두부를 먹는 것으로 우울한 휴가를 마감하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면 패착은 결국 앞뒤로의 바쁜 스케줄과 더불어 컨디션 조절 실패가 아니였나 싶다. 첫날 100도가 넘는 데스밸리와 그 다음날 30도로 떨어지는 날씨는 우리 몸을 힘들게 했다. 곰곰히 돌이켜 보면 휫트니 허가증이 나왔다고 해서 좋아할 것만은 아니었다. 원래 JMT가 주목적이었으나 휫트니 등정을 시도하는 바람에 정작 꿈에도 그리던 JMT는 발도 디뎌보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휫트니 등정은 최소한 2박 3일, 가능하다면 3박 4일을 계획으로 시도해야 하겠다는 배움이 있었고 휴가에는 무조건 아이폰은 지참하지 말아야 겠다는 소소한(?) 교훈이 있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다는 아내의 위로아닌 위로를 마음에 되새기며 또 휫트니 호스텔에서 만난 62세의 아저씨의 JMT 완주 이야기를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