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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분노의 포도

엘에이 북쪽을 지나 테하차피 고개를 넘으면 중가주 내륙에 접어듭니다. 거기서부터소위 말하는 미국의 '샐러드 볼'이라는 곡창지대에 접어듭니다. 베이커스필드가 있고 북쪽의 새크라멘토에 이르기까지 북으로 수백마일, 그리고 서쪽의 태평양까지가 또 어마어마하게 광활한 땅입니다. 

5번과 99번을 따라 그 길을 수없이 지나며 작물에 따라 1년에 9번도 수확한다는 검고 건강한 땅, 그 땅에 아직도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많은 이들을 목격하였습니다. 농작물뿐이겠습니까? 논밭사이로 천연개스와 원유를 뽑아올리는 채굴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분은 미국이란 땅의 경이로움을 가장 크게 느끼는 곳이라고 말하곤 하지요. 

그 중간 프레즈노 조금아래의 다뉴브와 리들리라는 동네는 많은 이들이 모르지만 남가주에 계시던 안창호 선생이 올라와 강연을 하면 하와이 이민으로 시작해 이 뜨겁고 고생스럽던 땅에서 모은 돈을 독립운동을 위해 쾌척했다던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땅이기도 합니다. 

그 곡창지대의 북쪽에 살리나스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101 프리웨이를 지나는 동네이고 몬트레이/카멜에서 내륙으로 20마일이면 닿는, 아직도 농업이 주무대인 동네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50마일 조금 넘으면 닿는 곳입니다. 

살리나스는 미국의 대문호인 존 스타인벡의 고향입니다. 이 살리나스를 터전으로 그는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을 썼습니다. 북가주로 옮겨와 살면서 그래도 이 지역이 배출한 대문호인데 [분노의 포도]는 읽어야지 했던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연말을 지나며 이제사 겨우 끝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로는 유일하게 자기 이름을 붙인 뮤지엄을 가지고 있다는 스타인벡 센터를 방문하게 될 일이 생길 것 같아 뭐라도 알고 가야지 하는 부담감(?)도 있었구요.. ^^

위대한 소설의 힘은 시대를 관통하여 읽은 이로 하여금 자신의 시대/이야기에 비추어 보도록 돕는 것일 겁니다. [분노의 포도]는 그런 소설중의 하나입니다. 이제 101과 99을 달리면서, 아니 멀리는 지금은 많은 이들이 낭만을 가지고 달리는 66번과 바스토우를 지나 베이커스필드를 잇는 58번의 테하차피 계곡을 다시 달리게 된다면 소설속의 조드일가의 신산스러운 삶이 느껴져서 마냥 즐겁지마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조드 부인의 고백처럼 조금이라도 좋은 날엔 힘들었던 시절을 되돌아 보고 인생이란 단계, 단계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물흐르듯이 흘러가는 것이라는 묵상을 좀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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