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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공원 & 트레일

나는 이 길을 '포로시 트레일'이라고 부르리라

by yosehiker 2024. 6. 14.

2008년에 이 길을 하루에 걸었는데 정말이지 하루만에 끝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무얼 봤는지 모르게 걸었다. 한번쯤은 다시 걷고 싶었고 특히나 Bright angel campground에 묵고 싶었고 phantom ranch의 그 유명한 레모네이드도 마시고 싶었다. 

2월 중순에 우연히 Bright angel에 한 자리가 난 것이 눈에 띄여서 곧바로 예약을 했다(너무 경쟁이 치열해서 잠시 생각하다 보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마침 예약한 날은 내 생일 당일이었다. 그 핑게로 아내에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 하루 일찍 출발해서 라스베가스에서 아침으로 설렁탕을 먹고 운전해서 그랜드 캐년까지 약 4시간 반 거리. Mather campground에서 하루 묵는다. 누구가 다 간다는 뷰 포인트는 그동안 수없이 가서 그냥 스킵하고 피자와 맥주로 하루를 마감한다. 혹시나 몰라서 가져온 슬리핑 백도 필요없을 정도로 선선한 날씨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emergency blanket만 챙겨서 내려가야겠다. 

새벽 첫 express hiker shuttle을 타고 시작점이 south kaibab trail로 이동해서 첫 발을 내딛은 시간이 새벽 5:37분. 그리고 브라이트 엔젤 캠프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14분이었다. 같은 버스를 탄, 플래그 스태프오신 캐런 아주머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얘기를 나누면서 내려왔다. 남편과 코네티컷에 살다가 은퇴한 후 플래그 스태프로 이사오셨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오기로 했는데 다들 사정들이 생겨 결국에 혼자 오셨다고 한다. 속도가 비슷해서 서로 별 일이 없는지 확인해 주며, 그러나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내려와 함께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좋은 hiking buddy였다고, 서로에게 감사를 표했다. 

잠시라도 그랜드 캐년의 속살을 보고 싶은 이들이 마지막까지 내려오는 곳은 cedar ridge, 혹은 skeleton point이다. 각각 왕복 3마일, 6마일 거리이고 고도가 만만치 않아 힘든 곳이다. South kaibab trail은 짧은 대신 물이 전혀 없고 햇볕을 피할 곳이 없어 꼼꼼히 준비하지 않으면 일사병이나 열사병에 노출될 수 있어 위험하다. 

편도 4.4마일 거리의 Tip-off에 오면 day hiker들은 거의 없다. 나처럼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가거나 여기서 인디언 가든으로 가로지르는 tonto trail을 뛰는 트레일 런너들만이 간간히 눈에 띈다. 오르는 나귀들(mule)이나 내려가는 하이커들 모두 숨을 고르고 마지막 3마일을 내려가는데 이미 기온은 90도(섭씨 32도)를 넘어선다. 문제는 그늘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3마일을 가쁜 숨을 내뿜으며 내려오니 카이밥 다리(일명 black bridge)를 만나고 도도히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 반겨준다. 마지막 0.5마일을 걸어 캠프장에 도착하니 100도에 가깝다. 겨우 텐트를 치고 팬텀 랜치로 걸어가 시원한 레모네이드(한잔에 6불인데 컵을 가지고 있으면 refill이 1불이다. 결국 두번을 리필했다)로 목을 축였다. 그 전날 먹고 남은 피자 3조각(상했을까 노심초사했다)가운데 2조각을 겨우 먹었다. 

피곤하기도 해서 그늘을 찾는데 눈에 띄는 그늘이 없어서 비어있는 그룹 캠프장의 피크닉 테이블위에 슬리핑 패드를 깔고 낮잠을 청해 보는데 뜨거운 바람에 내 몸의 염분과 수분이 빠져 나가는게 느껴질 정도다. 잠이 들었다 깨기를 1시간 반 정도.. 일어나 캠프장옆의 bright angel creek으로 가서 몸을 담그고 가져온 책을 읽었다. 그 와중에 프레드릭 뷔크너의 문장 하나하나는 얼마나 의미있고 깨달음을 주는지.. 그렇게 생일 당일의 오후를 보내다가 미리 예약한 5시 저녁식사를 하러 팬텀 랜치로 다시 갔다. 한국의 회사와 일한다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오신 Joe아저씨(형님?)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힘들더라도 꼭 꾸역꾸역 드셔야 남은 일정을 마칠 수 있다고(이 분은 일행과 north rim으로 올라가신다고 한다) 조언을 드렸다. 다음 날 아침 새벽 5시에 아침식사를 예약하기는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걸 먹고 출발하면 도저히 수요일 저녁 비행기를 탈 수가 없어서 물어보니 sack lunch로 바꿀 수 있다고 하여 저녁식사후에 sack lunch를 픽업하여 왔다. 새벽 2:40분으로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미 111도(섭씨 43도)의 지열로 달구어진 땅바닥과 암벽이 쏟아내는 복사열은 마치 찜질방에 누워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나가던 사진작가 두 명이 들렀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나의 텐트에서 10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방울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그들은 다가가서 사진을 찍는다. 이건 무슨 상황!? 텐트 지퍼나 잘 잠그고 자야지. 

2:40분에 일어나니 이미 옆자리의 커플은 출발하고 없다. 헤드랜턴을 켜자 수많은 나방들이 달려든다. 그래도 나름 숙달된 경험으로 새벽 3시에 정리하고 길을 나섰다. 올라야 하는 길이는 9.5마일이고 고도는 4300피트를 올라야하는 일정이다. 길은 깜깜하고 좀 무섭다. 그렇게 devil's corkscrew를 오르다보니 새벽 6시 무렵에 인디안 가든에 도착했다. 예전의 경험을 되살려 여기서 1시간 이상 쉬면서 가져온 sack lunch에서 베이글이며 사과, 소세지를 꾸역꾸역 먹으며 힘을 보충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전라도 사투리로 '겨우겨우'를 '포로시'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나는 '포로시 하이커'구나. 이제 남은 4.5마일인데 고도가 자그마치 3천 피트를 올라야 한다. 

갈수록 힘이 들고 기운이 빠진다. 3마일 하우스에 도착하니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은 떨어지지만 왜 이리 힘이 없는지.. 어제 캠프장에서 만난, 프레스콧에서 오신 활기찬 아주머니 세 분과 서로 기운을 북돋아주는 대화를 나누며 1.5마일 하우스에 오니 덥고 힘들다. 그 아주머니 세 분중의 한분인 kate 아주머니가 타겟의 스프레이로 나에게 물을 뿌려주며 일사병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미 모자부터 상의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온 몸을 물에 푹 적시는데도 뜨거운 태양을 당해낼 수가 없다. 다른 아주머니는 일행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소금을 한 줌 쥐어주며 먹어야 한다고.. 나도 무슨 뜻인지 알기에 꾸역꾸역 소금을 삼킨다. 이제 가지고 있던 energy boost을 쭉 빨아 먹으며 다시 마지막 1.5마일을 걷는데 내려가는 파크 레인저가 얼마 안 남았으니 기운내라고, 너의 most memorable, worst tour는 끝이 보인다고 조크를 한다. ㅎㅎ 이민 생활 40년만에 겨우 몇년전에야 은퇴하셨다는 70대 한인 노부부도 만나고.. 그렇게 꾸역꾸역 걸어 올라오니 정오가 조금 안되었다. 결과적으로 아침을 스킵하고 올라온 것이 좋은 결정이었다.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캠프장으로 가서 더할나위없이 기분좋은 샤워를 하고 다시 4시간 반을 걸려 라스베가스로 돌아와(여기도 106도다) 차를 반납하고 딱 적절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런 힘든 길을 굳이 걸어야하나 싶다가도 한 두해가 지나면 다시 그 길들이 나를 유혹하곤 한다. 하지만 점점 나이는 먹어가고 이 SK-BA 트레일도 다시 걷기는 힘들지 않겠다 싶다. 언제나 길을 나서면 생각들이 나를 깨우치고 다시 신호가 잡히는 일상으로 돌아오면 문자와 이메일과 카톡들이 복잡한 상념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나에게 길이란 일상의 복잡다단함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는 사건이고 시간이다. 그래서 그 길을 동경한다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어떤 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길들은 늘 언제나 마음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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