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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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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과 새 것 요즘 JMT, 혹은 백패킹을 가면 눈에 띄는 제품이 있는데 Sawyer squeeze water filter와 smart water bottle이다. 대세가 초경량을 지향하는지라 젊은 사람들을 보면 열에 아홉은 모두 이 제품을 쓴다.상대적으로 나이든 이들은 아직도 카타딘과 날진 물통을 가지고 다닌다. 물론 카타딘 정수기의 필터가 아주 오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바꿀 필요도 없고 날진 물통 역시 멀쩡한 바에야 새 걸로 교체할 이유가 없다. 다만, 무조건 옛 것이 좋다고 그것만 고집하기에는 새 것들이 주는 유익이 크다는 점이다. 세상 모든 물건이 그렇지만 특히나 무게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산 속에서야 더더군다나 두 말하면 잔소리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안주하거나 고집을 피우거나, 은근히 자기 주장을 ..
생명의 소리 막 새로운 설교 시리즈를 시작한 주일에 JMT백패킹에 나섰다. 사실 동행이 있다고 해도 각자의 속도가 달라 많은 경우는 혼자 걷는다. 쉴때나 이정표를 만날때 서로 기다려주며 안부를 묻고 정작 대화하는 것은 식사 시간이나 저녁 캠프를 치고 나서이다.버밀리온에서 시작한 하이킹은 베어릿지를 바라보며 오르는 지루한 길이었다. 하지만 조용히하기 이를데 없고 그래서 마음도 차분해지는 그런 숲길이었다. 중간에 비를 만났다. 40여분간 쏟아지는 빗속을 걸었다. 그마저도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비가 그치고 비옷을 벗느라 잠시 앉아 숨을 돌리는데 갑자기 숲속에서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걷는 내내 쥐죽은 듯이 조용하던 숲이 비가 오니 생명이 ..
작별 JMT를 걷고 있는데 김도현 교수님 사모님이 뒤에서 나에게, ‘목사님, 바지 뒤가 구멍이 나서 곧 속옷이 보이겠어요’ 하신다. 아이고 당황스러워라. ‘보여요? 아직 괜찮아요?’하면 바위나 나무 등걸에 걸터 앉을때 더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결국 손가락으로 넣어보면 구멍이 느껴질만큼 등산 바지가 찢어졌다.모자도 오래된 것이고 등산복 윗옷도 세일할때 샀더니 크기도 크지만 사진을 찍어보니 모두가 멋있는데 나만 추레하다.친구 토니 목사는 나보고 70년대에 필드트립 나오신 노 교수님 복장 같단다. 심지어 나마저도 동의가 된다. 집에 돌아와 바지를 아내에게 보여주며 그 얘기를 했더니 제발 좀 이제 리싸이클하고 새거를 사라고 성화다. 나, 이제 JMT 안갈지도 모르는데..아내의 조언대로 모두 리싸이클 센터에 가져..
이정표가 되는 사람 산을 오르다보면 이 트레일이 저 오른쪽의 산봉우리를 치고 올라갈지, 아님 왼쪽의 능선을 따라 스위치 백으로 올라갈지 분간이 되지 않을때가 있다. 그럴때는 어쩔 수없이 앞서간 사람의 흔적을 쫓게 마련이다.‘아, 저렇게 올라가고 있구나’를 바라보면 동시에 나의 위치를 확인한다. 먼저 가는 이를 쳐다보며 ‘언제 저기까지 가지?’라는 생각을 떨칠수는 없지만 그러다 보면 지금 나의 처지(?)가 애처롭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보다는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나도 한 발자국씩 가다보면 저기까지 도달하겠구나’로 생각을 바꾸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가 생긴다. 산을 오르며 품어야 하는 생각중의 하나는(그것은 어떤 형태의 걷기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걸어야 할 절대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 절대거리를 주파하는 속도..
산행과 음식 2 6명의 4박 5일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각자의 간식(에너지 바, 사탕…)은 알아서 준비하라고 했지만 그외의 음식준비가 만만치 않다. 아침은 오트밀과 건포도, 그라놀라, 커피, 그리고 한끼 정도는 한국에서 공수한 미역국밥.점심과 저녁은 신라면, 미역국밥과 같은 브랜드에서 만든 상하이 짬뽕밥, 밥풀떼기 즉석밥과 스팸(이게 낱봉지에 하나씩 담겨 파는게 있다. 평소에 먹지 않는 스팸을 산속에서 먹으면 기가 막힌 맛이다 ^^), 그리고 튜브형 볶음 고추장, 잠발라야, 스파게티, 타이 카레, 버섯 리조토… 등으로 준비하였다. 타이카레와 버섯 리조토는 최근에 미국에서 출시된 방부제가 덜 들고 맛은 아주 훌륭한 제품이 출시되어 선풍적인(?, 그래봐야 동호인층이 얼마 되지 않는 하이커들 사이에서..
간단히 언급하기는 했지만 첫날부터 정수기의 손잡이가 부러지는 바람에 하이킹 내내 고생을 했다. 손잡이가 부러진 지점은 Reds meadow에서 약 3.5마일 떨어진 곳이라 토니 목사는 다시 가서 여분의 정수기를 가져오겠다고 했으나 여러 일정상 차질이 생길 것 같아 조심히 사용해 보자고 만류하였다. 좀 불편하기는 했으나 큰 어려움없이 물을 정수할 수 있었다. 물과 관련해서 가장 어려웠던 기억은 아무래도 첫날 밤이었다. 모두들 거의 물이 떨어졌는데 피곤에 지쳐 캠프를 친 곳은 지도상으로도 그렇고, 주변을 둘러봐도 물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정말로 아껴서 저녁해 먹고 마시고 나니 다음 날 첫번째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물.” 가장 가까운 creek을 찾아 정수하니 살 것 같다. 오가는 JMTer들이나 PCT..
산에서 만난 꽃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시가 있다. 오르막 길을 오를때는 꽃이고 경치고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을만큼 힘들때가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리막길에서도 꽃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른 것 없다. 그저 내려오는 것도 오르막길 못지 않게 힘들거나 혹은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목적의식때문이다. 도나휴 패스를 내려오며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했다(내리막길도 힘들고 그래서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마음). 그러다 보니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유있는 스케줄이었는데도 거의 다 내려와서야 ‘내가 뭐하고 있는건가”싶어 눈을 들어 초원을 바라보았다.성자(saints)들은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회개하는 사람일 뿐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저 주..
산행과 음식 산행이 덥고 지치기 시작하면 늘 나누는 대화는 원초적인 음식 이야기이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냉면이다. 사실 냉면으로는 부족하고 고기와 냉면을 먹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산중에서 그게 가당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끼니때마다 드론이 날라와서 냉면도 주고 짜장면도 주면 정말 쉽게 JMT를 마칠 수 있겠다는 허황된 꿈도 꾼다.배고프고 힘들면 본능적으로 음식이 생각나듯이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