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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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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들 넷째날은 도나휴 패스를 넘는 날이었다. 이번 백 패킹의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고 그날 걸어야 하는 코스가 길기도 해서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패스아래까지는 완만한 경사이기는 했지만 절대 거리는 줄일 수가 없어 일행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숨이 무척이나 차 올랐다.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데 이미 패스 정상에 도착한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뭐 내가 죽을 정도는 아니인지라 아무도 내려와서 도움을 주려는 이는 없었고 나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올라가려는 길이 눈에 덮혀 있으니 ‘이리로 올라오라’고 길을 안내해 주고 손짓해 주는 정도였다. 오르다 말고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어휴, 얄미워라. ㅋㅋ 다섯 모두 나에게는 증인들이..
배낭의 허리 나의 백 패킹 배낭은 그레고리 제품이다. 오스프리와 더불어 배낭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제품인 deuter가 그 뒤를 바짝 쫓는다고 해야 할까? 그레고리와 오스프리는 각각 사용하고 있는데 두 배낭회사 모두다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공히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허리 부분의 안정감과 무게의 분산기능이다. 뭐 다들 아는 거지만 배낭은 자기 몸통 길이를 먼저 재고 거기에 맞는 싸이즈를 골라야 하며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허리 벨트를 먼저 엉덩이뼈위로 올린 후에 어깨 끈을 조절해야 한다. 이번 백패킹은 지금까지 내가 짊어졌던 배낭가운데 가장 무거웠는데 첫날은 그 배낭의 무게가 너무 힘들었고 날이 갈수록 나아지기는 했지만 매일 오후가 되면 배낭의 무게가 나를 땅으로 ..
이상한 조합 이번 존 뮤어 트레일 하이킹은 참 이상한(?) 조합이었다. 나와 연결되었다는 걸 제외하고는 모두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멀리 콜로라도에서 김도현 교수님 부부가 오셨고 함께 나와 교회를 섬기는 지준/혜윤 부부가 조인했다(참고로 혜윤 자매는 김교수님 부부의 딸과 비슷한 나이이다.) 엘에이에서 토니 목사가 어려운 시간을 내 주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산행을, 그것도 백 패킹을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여행도 관계가 상하기 쉬운데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들면 금방 서운할 일이 생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4박 5일의 여정이 참 좋았다.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을 다른 이가 가지고 있었고 그 장점들을 남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고 돕는 최고의 팀이었다. 내가 계획했다고 하지만 정말로 나는 숟가락 하..
참 다른 친구 이 친구는 나와 참 다르다. 그는 contemplative하고 나는 informative하다. 그는 이끌어가고 나는 연결해 준다. 그래서 그와 얘기를 하다보면 나와는 참 다르다 하는 생각을 할때가 많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생각과 묵상이 많은 친구이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 애쓰는 사람이다. 참 다른 친구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고 달라서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래도 또 함께 산에 오른다.
하이킹 폴 오랜동안 애용하던 Leki pole을 잃어버리고 다시 REI pole을 사용하고 있다. 구입한지 14년쯤 된 것인데 요세미티의 Glen Aulen을 시작으로 그랜드 캐년, Baldy, half dome… 여러 곳을 나와 함께 했다. 지팡이는 경사가 급한 곳을 오를 때, 미끄러운 길을 걸을 때, 물을 건너야 할때, 그리고 올라갈 때보다는 내려오는 길에 필수적이다. 예전에는 하이킹을 시작하면 무조건 지팡이를 찍으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제는 짧게 줄여서 그냥 손에 들고 걷는 경우가 많고, 정 힘들때는 배낭에 꽂아서 내려오곤 한다. Alta peak 트레일에서 그렇게 내려오다가 곰을 만났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배낭에 꽂혀있던 지팡이를 꺼내들어 소리나게 치고 정말로 그 녀석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그 지팡이를 높..
고딕 성당과 산봉우리들(우연의 일치) “고딕 성당을 설계했던 이들은… 메아리가 울려 퍼질 만큼 엄청난 아치들이 인간의 거주지로는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성당들은 보통의 집이나 상점과는 달리, ‘우리의 규모에 맞추어' 지은 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 성당들이, 음악을 연주할 때 말고는 우리가 보통 닿을 수 없는 신비로운 하늘의 세계를 불어일으키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이다.”(시편, 톰 라이트, 41) “산군 전체가 결정암 특히 화강암으로 되어 있음을 누구나 아는 바다…. 그것은 한 개의 거대한 결정체다. 모두가 고딕 양식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1000, 1500, 2000미터가 되는 대성당으로 가득한 가공의 도시와도 같다…. 멀리 높은 곳에서 하늘과 땅이 닿은 듯하고 선과 색의 조화가 완벽하며 그것은 위대한 음악으로 변했다..
곰통(bear resistent canister) 묵상에 관한 훌륭한 책인 '묵상의 여정'에서 저자,박대영 목사님은 에벌린 언더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인간이란 원하다, 갖다, 하다'로 요약되는 자기중심의 삶을 살다 끝나게 된다고... 이 작고 검은 통은 bear-resistent food container. 말그대로다.곰의 공격을 피해 모든 음식을 여기에 넣고 지고가야 한다.아무리 꾸겨 넣어도 10일이상의음식은 넣을 수가 없다. 이 작은 통에 된장찌게도 넣고 냉면도 넣고 돼지불고기도 넣어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음을 산에서 배운다. 산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통에 담다가 다시 꺼내고 정말 필요한가를 고심하게 한다. 산을 광야로 비유할 수 있다면 산 역시 가장 필요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