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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여행의 이유]

군대를 제대한 1991년은 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1989년으로부터 이제 겨우 2년이 지난 때였다. 먹고 살만해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해서 참 많이들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때 많은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나도 간절하게 유럽으로 가고 싶었지만 가능한 시기는 겨울이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동남 아시아로 한달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그전까지는 제주도도 한번 가본적이 없으니 비행기도 처음이었는데 첫 비행기를 타고 내린 곳은 홍콩, 그곳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한밤중에 찾아갔던 침사추이 15층의 호스텔을 잊지 못한다. 중학교때 어느 화보집에서 보고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던 발리를 비롯해서 태국의 이곳 저곳(요즘 한달 살기로 유명한 치앙마이도 그때 갔었다), 그리고 구정이 겹쳐서 가는 바람에 다녀왔다고 하나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마지막 여정지였던 대만까지.. 

미국에 살며 전직이 의심스럽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지만 사실 다녀본 곳은 그리 많이 없어서 다만 내가 다녀온 곳들을 열심히 얘기했다. 그래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가 출간되었을 때 너무 읽고 싶었지만 반대로 읽으면 가슴이 뛸까봐 일부러 외면했다. 어찌어찌 그 책은 그럼에도 내 손에 들어왔고 혹여나 너무나 많은 여행 에세이의 하나가 아닐까 했던 내 걱정(?)이 무색하게 말 그대로 여행의 이유들을 차분히, 사색적으로, 그러나 아주 현실적인 그림으로 풀어주었다. 다 읽고 나니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고 서늘하다 할만큼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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