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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단상42

다람쥐와 도토리 가을이다. 자주찾는 랜초의 산행길에는 도토리가 지천이다. 그 도토리를 먹고 저장하기 위해 가을 다람쥐들은 분주하다. 다람쥐들은 자기들이 숨겨놓은 도토리의 70-80%를 찾지 못한다고 한다. 저렇게 열심히 땅을 파고 숨기는데 찾지 못한다니. 그들의 노력이 참 아쉽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다람쥐들이 찾지 못한 도토리는 어디론가 더 퍼져나가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또다른 생명이 잉태된다. 목회의 현장에서 내가 뿌리고 애쓴 것들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람쥐와 도토리에게서 배운다. 생명을 품고 있다면 그 씨앗은 어디론가 퍼져나가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름답게 자라날 것이기 때문이다. 2024. 11. 5.
강하고 빠른 개울을 건너는 법 존 뮤어 트레일을 걷다보면 여러가지 불편한 점들이 있다. 일단 나의 경우에는 모기가 가장 힘들고 화장실같은 것은 불편을 감수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실제에서는 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상의 불편이나 그것을 좀 넘어서는 수준이지, 위협의 수준은 아니다. ‘위협’이라고 할때는 정말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대체적으로 트레일도 잘 닦여져 있고 돌발행동만 하지 않는다면야, 그런 위협을 몇 가지 안된다. 흔히들 물어오는 ‘곰은 없어요?’라고 하는 곰이나 다른 야생동물이 주는 위협을 마주한 적은 없다. 차라리 흔하지 않지만 뱀이나 벌이라면 모를까. 실제로 경험한 가장 기억에 남는 위협은 눈이었다. 7-8월에 눈이라고? 그렇다. 지난 겨울의 적설량에 따라 3000미.. 2024. 7. 11.
나방과 걸음 새벽 2시 반, 너무 덥고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까지 더하여 잠자기는 글렀습니다. 이런 줄 알고 새벽에 출발하려 했던 거지요. 익숙한 텐트이고 이미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서 정리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헤드램프를 켜고 얼마지나지 않으니 나방들이 텐트로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손으로 그 녀석들을 헤치며 겨우 정리를 하고 깜깜한 산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불빛을 쫓아 나방들이 달려듭니다. 손으로 나방을 흩으려니 걸음걸이가 휘청거립니다. 잘 포장된 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돌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한쪽은 낭떠러지이니 잘못하면 콜로라도 강으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입니다. 대충 손으로 휘저으며 더 중요한 것은 내 걸음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살아간다는 일도 비슷하지 .. 2024. 6. 17.
Mule-나귀 나귀는 엄마 말(horse)와 아빠 당나귀(donkey)의 교배종이다. 말에 비하여 힘이 좋고 위험스러운 환경에서도 겁먹거나 흥분하지 않아서 산과 계곡에서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나르는 일에 최적이라고 한다. 길이 좁아서 한 발자국만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그랜드캐년의 계곡을 오르내리는 길에 나같으면 그 나귀에게 몸을 맡기지 못할 것 같은데 이런 나귀의 습성과 훈련은 의외로 신뢰할만하다. 참고로 그랜드캐년의 나귀들은 내쉬빌의 나귀농장에서 40년넘게 공급하고 있다고 셔틀버스의 기사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같은 곳에서 헬리콥터를 한 시간 운행하는데 드는 비용이 2천불이란다. 그럼에도 헬리콥터가 갈 수 없거나 물건을 내리기에 적합하지 않기에 비용으로나 모든 면에서 .. 2023. 8. 6.
순례자 순례자는 속도 자체의 속도대로, 즉 시간이 흐르는 속도대로 시간 속을 통과한다….시간과 지형이 함께 꾸미는 음모를 순례자는 당해 낼 재간이 없다(길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219) 길위에서 배운 것중의 하나는 거리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보는 것보다 더 멀어보이고, 더 높아보이고, 더 힘들어 보이는 산들은 딱 그만큼의 시간을 더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 지형과 시간은 무릎꿇게 할 그 지점에 이르러서야 나를 놓아주고 비로소 쉼을 허락했다. (자세히 보면 점처럼 보이는 이들이 사람이다. 부은 발을 물에 담그고 여전히 익을 기색이 없는 버섯 리조토를 꾸역꾸역 먹으며 이것을 삼켜야만 저 고개를 넘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2023. 8. 6.
친구 신학교에서 처음 만났으니 벌써 27년되어가는 인연입니다. 이 친구는 저와 참 다릅니다. 그는 contemplative하고 저는informative합니다. 그는 이끌어가고 나는 연결해 주었습니다. 그는 꼼꼼하고 저는 대충입니다. 그래서 그와 얘기를 하다보면 나와는 참 다르다 하는 생각을 할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그렇지만 그래도 만나면 좋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이친구의 좋은 점을 닮아갑니다. 산에 가려고 생각하면 늘 1순위로 물어보는 친구입니다. 산에서도 저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 친구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2023.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