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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 교회 이야기

고호의 편지

by yosehiker 2023. 9. 5.

"보다시피 네 편지는 잘 받았어. 정말 고맙다.. 특히 동봉된 100프랑 지폐, 고마워.... 다만 내 발목을 잡았던 건, 캔버스와 월세였어.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타세 상점의 캔버스가 야외 작업에서 마음에 안드는 점이 너무 많아. 앞으로는 일반용을 써야겠기에, 틀까지 포함해서 캔퍼스 천을 50프랑어치를 샀어. 큰 크기가 내 작업에 잘 어울려." - 빈센트 반 고호, 1888년 6월 15일과 16일 

고호는 형이고 테오는 고호의 4살 아래 동생입니다. 그들은 생전에 약 600통이 넘는 편지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고호가 죽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테오도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지금 그 둘은 오베르 쉬아즈에 나란히 묻혀 있습니다. 고호와 테오는 단순한 형제사이 이상이었습니다. 여러모로 괴팍하고 힘들었던 고호를 끝까지 품어주었던 것은 테오였습니다. 테오가 없이는 고호는 미술가로서도, 아니 한 인간으로서도 생존이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편지뿐 아니라 고호가 동생, 테오에게 편지한 내용가운데 얼핏 보아도 60%이상이 돈을 부탁하거나 돈을 받아서 고맙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저녁마다 고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한 두개씩을 읽고 잡니다. 그리고 편지의 내용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그림을 지긋히 바라봅니다. 우리가 아는 고호의 명작들가운데 정말 많은 그림들이 아를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니 테오의 도움이 없이는 고호는 월세를 낼 수도, 캔버스와 물감을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없이는 고호의 작품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며 여러분들을 떠올렸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에 감사를 표현한 것처럼 여러분들이 제 아내와 저희 가정을 위하여 마음써주신 것들에 감사드립니다. 목회자는 별 거 아닌 존재입니다. 그냥 한 사람일 따름이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성실히 살아가려고, 하나님앞에 신실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 사역과 삶에 힘을 주고 가능케하는 것이 테오와 같은 여러분들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께 머리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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