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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야!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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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함박눈이 내립니다/함박눈이 내립니다/모두 무죄입니다(고은) 참 기막히게 아름다운 시입니다. 고은이란 시인이 지은 시입니다. 장 바니에란 분이 계십니다.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를 세우고 일평생을 섬긴 분입니다. 존 하워드 요더라는 학자는 [예수의 정치학]이란 책으로 기독교 윤리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친 분입니다. 각각 자신의 세계에서 그 시와 섬김, 학문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성적인(sexual) 범죄로 말년에 지탄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와 영성에 관한 책과 통찰을 주는 해석들을 읽어야 할지, 내다 버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
부모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총구가 머리에 닿아 있는 것 같은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 앤 라모트) 비연애, 비혼이 이상하지 않은 세대가 되었습니다. 이전 세대에는 당연하다 여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선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결단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둥지가 없는데 어떻게 새끼를 치냐?’고 항변하는 젊은 세대의 고민과 절절함을 그냥 흘려 듣지않게 됩니다. 그런 후에 갖게 된 아이들은 얼마나 소중합니까? 소중한 만큼 걱정과 염려가 늘어갑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근심은 늘어가겠지만 근심의 무게보다 더 기도의 무게를 늘려 가십시오. 그것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자녀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의 먹이심과 돌보심을 신뢰하십시오.
재난과 구원 재난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는 구원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구원은 곧 재난을 다루는 하나님의 행동이기 때문이다(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지구적인 환경의 파괴나 비인간적인 전쟁이나 다양한 폭력을 재난이라고 부릅니다. 개인의 삶에 다가온 역경을 고난이라고도 이름합니다. 같은 것들입니다. 재난/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구원은 깨달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깨달음/인식은 슬픈 일이지만 동시에 기쁜 일이라고 하는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모든 재난을 이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것을 의지하지 않고는 인간에게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시골집 선반의 메주 시골집 선반 위에/메주가 달렸다./메주는 간장, 된장이 되려고/몸에 곰팡이가/피어도 가만히 있는데/우리 사람들은/메주의 고마움도 모르고/못난 사람들만 보면/메주라고 한다(이오덕) 나이가 먹을수록 구수한 된장찌게가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좋은 된장이라고 선물을 주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그 맛이 마켓에서 파는 된장과 다르다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메주’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입에 담아 봅니다. 예전에는 그 귀한 것을 몰라보고 냄새난다고 싫어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냄새마저도 그립습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교회를 섬기면 섬길수록 메주같은 사람들이 그립고 좋습니다.
Psalms of Reorientation [시인의 영성]에서 차준희 교수는 시편의 장르중의 하나인 감사에 관한 시들을 '방향 재설정의 시'(Psalms of Reorientation)이라고 이름붙인다. 영성의 종착역이 사랑과 감사라면 곤고한 삶가운데 다시 re-routing하여 가야할 길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참 적절한 표현이다. 그것도 '시'를 통하여 말이다.
새로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답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그가 칼 바르트에 대하여 쓴 짧은 글을 읽다가 발견한 글귀이다. 신앙의 여정은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진지한 성경공부와 설교를 꾸준히 듣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이미들 알고 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답이 내 목구멍안으로 넘어가 나의 것이 되는 것..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그 답'에 익숙해 지라고 설득하는 것이 지역교회의 목회이다.
고딕 성당과 산봉우리들 “고딕 성당을 설계했던 이들은… 메아리가 울려 퍼질 만큼 엄청난 아치들이 인간의 거주지로는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성당들은 보통의 집이나 상점과는 달리, ‘우리의 규모에 맞추어' 지은 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 성당들이, 음악을 연주할 때 말고는 우리가 보통 닿을 수 없는 신비로운 하늘의 세계를 불어일으키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이다.”(시편, 톰 라이트, 41) “산군 전체가 결정암 특히 화강암으로 되어 있음을 누구나 아는 바다…. 그것은 한 개의 거대한 결정체다. 모두가 고딕 양식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1000, 1500, 2000미터가 되는 대성당으로 가득한 가공의 도시와도 같다…. 멀리 높은 곳에서 하늘과 땅이 닿은 듯하고 선과 색의 조화가 완벽하며 그것은 위대한 음악으로 변했다..
일상 from 연금술사 "그런데 아저씨는 왜 지금이라도 메카에 가지 않는 거죠?" 산티아고가 물었다.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저 크리스털 그릇들, 그리고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나는 오직 메카만을 꿈으로 간직하고 싶어."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오래된 책을 펼치니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일상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조화를 이렇게 다른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낼 수도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