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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히 사는 이야기

귀환

12월 29일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2시무렵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따뜻하기는 했으나 을씨년스러운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 1994년 1월에 미국에 왔으니 꼭 30년이 되었다. 그리고 두 달여의 한국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미국은 모든 것이 익숙했다. 오자마자 청소를 하고 겨울 이불로 바꾸고 짐을 풀고 바빴다. 첫 날은 모두가 그렇듯이 잘 잔다. 토요일에 일어나 장을 보고 주보를 만들고 교우들에게 설교를 보내고 2세들 메시지를 준비했다. 오랜만에 교회에 갈 기대감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에는 새벽 6시까지 꼬박 날밤을 새고야 말았다. 얼핏 1시간 잠이 들었나?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지난 10년동안 늘 해왔듯이 교우들이 마실 커피를 끓여 보온통에 담고 2023 마지막 주일의 성찬 준비까지 마치고 교회로 향했다. 

두 달은 지난 10년의 익숙함을 이기지 못한다. 습관적으로 의자를 준비하고 이런저런 소소한 예배준비를 하니 교우들이 오기 시작한다. 커피와 더불어 그동안의 안부, 아내의 상태, 반가움을 나누고 예배를 시작했다. 신명기 34장에 등장하는 느보산의 모세로 설교하였다. 120세에 죽는 그의 눈빛이 형형하였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과거를, 심지어 이루지 못한 것, 아쉬운 것, 미련이 남는 것들까지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눈빛이라고 설교하고 설교자인 내 자신도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이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말씀하셔서 이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었다고 나누었다. 예배를 마치고 몇 가정과 함께 점심을 하며 소소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아직 연말휴가에서 돌아오지 않은 교우들이 많다. 1월중순이야 되어야 모두들 보려나. 하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내 집과 교회는 참 좋다. 한국에서 아내와 이런 대화를 했다. 사람들이 휴가를 가면 집으로 돌아갈 시간까지 충분히 즐기고 누리려고 애쓴다. 그래야 집에 돌아왔을 때 후회가 없이 그 시간들을 잘 보냈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소위 천국이라는 본향만을 바라며 지금의 이 시간들을 그저 견디고 참아야 하는 나날들로만 여길까? 지금의 이 순간들도 충분히 그 분안에서 누리고 감사할 수 있다면 돌아온 집이 반갑듯이, 마지막에 다다를 본향이 감격스럽지 않을까? 

대화로만 나누었던 것이 막상 집으로 돌아와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니 두 달의 시간이 꽤 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돌아오려면 다시 두 달가까운 시간이 지나야 하지만 이 시간들도 평안히 받아들이며 나에게 주어진 날들을 살아가야겠다. 그러고 보니 이제 두 어시간 지나면 2024년이다. 지난 한 해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밤이다. 모두들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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