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84 밥 먹다가, 울컥 국밥을 좋아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통영의 전통시장에서 새벽에 먹었던 물메기탕이고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와 공유하는 추억도 설렁탕입니다. 그래서 이름난 국밥집에는 항상 끌립니다. 그 중 하나가 '광화문 국밥'입니다. 지난 겨울에 혼자 찾아가 먹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냥 먹었다고 하기에는 아쉽고 국밥 한 숟가락을 뜨기전에 물끄러미 바라 보았더랬습니다. 아주 깔끔하고 시원한 돼지국밥이었습니다. 그 국밥집은 박찬일 쉐프라는 분이 운영하는 집입니다. 원래는 이탈리안 쉐프라고 합니다. 이탈리안 쉐프가 국밥집을 열게된 연유는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 분이 [밥 먹다가, 울컥]이라는 책을 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인트가 있어서 공짜로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과 음식에 얽힌 개인의 추.. 2024. 11. 21. 기독교의 발흥 원래 읽으려던 계획이 없었는데 어떤 필요때문에 갑자기 읽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는 종교사회학자이다. 그래서 그가 기독교의 부흥을 입증하는 방식은 지극히 사회학적 접근이다. 몇몇 주장들은 새롭게 배우는 것이고 그래서 흥미롭다. 가령 기독교인의 '비합리적 선택'과 그 구체적인 실천인 '희생'과 '낙인'을 풀어가는 방식이 신선했다. 1세기에서 기독교가 국교화된 콘스탄티누스황제때까지의 과정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전염병때의 기독교인의 헌신적인 사랑에 기초한 돌봄이라던가, 혹은 대단한 순교의 스토리를 통한 영향력인데 오히려 로드니 스타크의 책에서는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1세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위생적이고 더럽고 가난하며 절망적인 현실의 삶.. 2024. 11. 19. 홍시 가을이 되니 미국에 사는데도 홍시가 눈에 띕니다. 누군가 홍시를 주셔서 며칠 익힌 후에 아내와 함께 먹으니 참 맛있습니다. 잊고 있었던 홍시의 맛에 다시 감격하게 됩니다. 홍시를 먹으며 며칠 전에 읽었던 하이쿠가 계속 머리에 떠오릅니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라네요.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나이가 먹을수록 젊었을 때 미숙했던 제 모습들이 불쑥불쑥 생각납니다. 떨디떫었던 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아마도 저는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더 많을 겁니다. 그 때의 제 모습은 잊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건 그저 바램일 뿐입니다. 다시 만날 기회들이 있다면 그 때의 실수를 고백하고 조금 떫은 맛은 사라졌기를 .. 2024. 11. 18. 성서의 역사 잠자리에 들기전 어떤 날은 꾸벅꾸벅 졸면서 읽었다. 5페이지도 읽고 10페이지도 읽고.. 그러다보면 끝이 나겠지하는 심정으로.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경자체에 대하여 궁금한 것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이 책은 그 소개만큼이나 배우는 것들이 많다. 다만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번역한 번역자와 출판사에게 갑자기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는. 해제까지 포함해 자그마치 850페이지다. 2024. 11. 14. 하나님 나라 복음과 제자도 꽤 오래전에 이 책의 저자가 어느 글에 '좋은 책이란 통념이 아니라, 통찰을 주는 책'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후로 개인적으로 책을 추천하거나 선택할 때 아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구절이 되었습니다. IVP를 사임하고 어떤 일을 하시나 궁금했는데 이번에 '하나님 나라 복음과 제자도'라는 책을 내셨네요.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이미 앞부분의 몇 챕터에서 좋은 책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껍지 않은 책인데 하나님 나라 복음과 제자도에 관련된 주제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나갑니다. 하지만 기존에 성서학계에서 논의된 하나님 나라 개념을 공부하지 않고는 그 문장 하나하나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만큼 농축되어 있습니다. 쉬워보이지만 만만히 볼 책이 아니란 뜻입니다. 현장에서 목회하는 저와 같은 목회자들이 곁.. 2024. 11. 9. Killng your darling 오~~ 달링.. 말그대로 사랑하고 애정하는 대상이다. 설교에도 달링이 있을까?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어떤 문구, 단어, 예화, 아이디어에 꽂혀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심지어 그것이 그 날의 설교와 꼭 연결되지 않는 것인데도 놓치기 싫어 끝까지 붙잡고 있을 때가 있다. 어느 소설가의 인터뷰를 읽다보니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killing your darling", 즉 소설가는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속에서 정말로 애정하는 어떤 인물/캐릭터를 삭제해야만 비로소 그 소설이 완성된다고 했단다. 소설만 그러하겠는가? 내 고집으로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그 무엇이 설교에는 없을런지 생각한다. 2024. 11. 7. 이전 1 2 3 4 ··· 81 다음